Today. 21.2.7


오늘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같은 지역에서 식당을 하는 누님과 그 남편,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과 친구….

그 사장님 아니 나에겐 형님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자네는 왜 결혼을 하지 않나? 질문을 받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대답할수 없는 답을 갖고 있는 내게 ….. 하하하 결혼을 못한게 아니라 안한거라는 두리뭉실한 대답을 한순간 다시 재차 질문을 들어왔다.

왜? 하지 않냐고….

그래서 다시 대답을 했다…. 인생무상입니다. 그 이후론 더이상 질문이 들어오진 않았다.

커밍아웃을 할수는 없는 자리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할수 없었다.

촌에 살면… 좋은게…. 이런게 좋은게 아닐까…. 야외에서 바베큐파티를 할수 있는…. 조금 추웠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옆에는 나의 애견 진돗개(아마도 믹스견?)이 옆을 지키고…. 아마도 주인이 던져주는 고기한점을 얻어먹기 위해서….

참고로 방역수칙 위반은 아니다… 왜냐하면 야외에서 진행한 바베큐 파티니까… 실내가 아님을 강조한다.

멈춤. 그리고 여유.


숨가쁘게 달리지만 말고…. 잠시 멈춰서 숨좀 가다듬고 똑바로 온게 맞나 잠시 뒤를 돌아보자.

설사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벗어났다 해도…..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면 왜 이렇게 왔는지?

왜 벗어났는지? 다시 돌아갈수 있는지? 아니면 가던길 그대로 가도 되는지? 확인할수 있는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될거야.

처음 출발할때 그 길이 아닐지라도

내가 하고자 했던 그 길이 아닐지라도

내 의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서 지금의 자리에 왔어도….

그건 잘못한게 아니야. 실수도 아니야....

인생사가 그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야.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일이 정말 부지기수야. 그러니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마…

자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천천히 뒤 돌아봐.

울고 싶다면 울어도 되…. 목놓아 울어도 되…. 그래서 네 마음이 풀어진다면 시원해진다면

얼마든지 울어도 되…. 눈물은 내가 닦아줄께…. 눈물 닦아주면 한번 웃어줄래?

너의 그 수줍은 미소 한번 머금어 주면 나도 하나도 안 힘들거 같아.

눈을 감고 피아노 선율에 네 모든 감정을 맡겨봐.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음악에 집중해봐…

여유로움.


Photo by Valeria Boltneva on Pexels.com

여유로움…..

커피 한잔과 따스한 햇살… 그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잠시 봄이 오는 창밖을 커피향 가득 채우고 내다 볼수 있는 여유를 한껏 부려보자.

나를 되 돌아볼수 있는 시간…..

봄이 오고 있다. 저 들녘에 푸릇 푸릇 생명의 씨앗이 꿈틀대어 태동을 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어보자. 언 흙을 뚫고 올려오는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자.

잠시 쉬었다 가자. 잠시 쉬었다 가도 늦지 않음을 뒤쳐지지 않음을….

DS이전 사전플레이는?


DS이전의 사전플레이를 다양하게 표현을 합니다. 뭐 그건 그들의 단어일테니까요.

저는 DS전의 사전플레이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뭐 다 다를테니까.

사전플레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제 블로그니까 갑론을박은 논외로 하고 제 개인적인 주관적인 의견을 개진하는것에 다 할애를 하는게 맞을겁니다.

일단 저는 사전플레이에 대해서 반대입니다. 물론 돔이나 마스터의 입장에서라면 찬성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서브나 슬레이브들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반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있습니다. 육체적인 본능에 충실한 이들에겐 당연히 칼맞을 소리란걸 압니다. 또한 가벼운 플레이와 DS를 전제하지 않는 일플을 하는 이들에겐 어림도 없는 소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DS를 전제로 대화를 하고 있고 그리고 DS이전에 플레이의 합이 맞는지를 해보는 사전플레이가 왜 서브에게 위험한지? 그리고 돔의 의중이 어떠한지… 너무 많은 사례들이 그리고 너무많은 예가 있습니다. 물론 좋은 경험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일의 대화, 또는 몇개월의 대화만으로 그 상대에 대해서 다 알수 없습니다. 물론 평생을 같이 해도 모르는것이 사람이기 때문이죠.

우린 상대의 단면적인 모습 또는 단편적인 상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여 상대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상대가 제공하는 단면적이고 단편적인 정보 뿐만이 아니라 그 정보들을 제공하는 그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정 호감이라고 할겁니다. 그런 여러 정보들이 스스로 취합되어 그것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정이후의 모든 책임의 소재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본인입니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 상대가 이렇게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른 행위로 인해서 내가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그 어떠한 행위도 상대는 하지 않았다 했을때는 얘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믿음, 신뢰 좋습니다. 행위 이전에 형성되어 있던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대화를 통해서 얻어지게 됩니다. 물론 허울뿐인 각종미사어구를 동원한 상대를 현혹하기 위한 대화는 당연히 캐치가 되겠지만 그 진정성이 뭍어 난다면 당연히 믿음과 신뢰가 형성이 될것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전플레이를 할수도 있습니다.

제가 반대하는건 그 경우의 수랍니다. 물론 역으로 돔이 그렇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례에서 돔보다는 섭의 사례가 더 많습니다. 그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반대의 의미는 그 경우의 수를 줄이라는 겁니다. 아니 없애고 그 관계가 형성되고 지속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반대한다 한들… 그건 한낱 제 의견일뿐입니다.

짧은시간 상대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수는 없습니다. 만약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었고 상대로 부터 사전플레이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면 그때는 동일선상의 상대이기 때문에 서브는 요구를 할수 있으며 당연히 거부도 할수도 있습니다. 또한 플레이에 대한 사전 조율이나 협의나 합의도 할수 있습니다. DS를 목적으로 했다고 할지라도 DS전에는 동일선상입니다. 동률조건이기에 가능하며 플레이시에도 마찬가지로 동일선상이기 때문에 본능적 행위가 아닌 이성적 판단행위로서 플레이에 임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상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능적 행위로서 사전플레이를 했다면 당신은 100% 상대에게 제압당하게 될것이며 당연히 그 상황에서 무릎을 꿇게 되고 머리를 조아리게 되며 상대에게 아직 시작되지 않은 DS의 시작을 스스로 알리게 될것입니다.

물론 사전플레이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자신의 원하는것이라서 그런 상황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만족스럽지 않다면? 과연 그 공간에서 그 상대에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력으로 제압당하는 상황이 된다면 벗어날수 있을까요? 벗어나지게 될까요? 그 상황을 정리할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됩니다. 당연히 할수 없을겁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행위로서 사전플레이에 임해야 하고 만약을 대비해 주변의 친한 에세머가 있다면 사전플레이에 대한 언질을 주고 비상연락을 할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놓는것이 좋습니다. 만약 없다면 가까운 지인을 통해서 자세한 언급은 할수 없겠지만 혹시나 나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 내가 어떠한 짧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또는 전화연결이 안될시에는 지체없이 신고를 부탁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것입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것은 사전플레이를 가장한 상대의 착취입니다. 이것은 에셈의 DS를 망가뜨리는 그리고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하고 그 착취를 통해서 얻는 쾌락의 깊이는 그 상대에게는 깊겠지만 그 착취를 당하는 섭은 오래도록 아니 평생토록 안고 가야할 트라우마가 될수도 피해가 될수도 있습니다. 즉, 가해자, 피해자의 구분으로 막을 내리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본능적 행위가 가져다주는 쾌락은 그 어떤 쾌락보다 깊고,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본능적 행위는 그 짧은 쾌락의 깊이보다 더 깊은 트라우마와 더 긴 피해의식을 남겨주게 될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에셈에서 과연 이성적인 판단을 할수 있는 행위가 있느냐고? 또는 이성이 개입할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고? 모르는 소리지요. 본능적인 행위만을 보고 하는 소리랍니다.

우리는 모두 이성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력과 결정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어적기제도 다 갖고 있습니다. 이성적 사고와 판단력에 의한 본능을 결정하고 행위를 결정하는것입니다. 단순히 정말 이성을 배제하고 본능적 쾌락을 위한 행위를 선택하는것이라면 그건 인간이 아닐겁니다. 동물조차도 성행위에 대한 쾌락보단 종족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이라고 표현하는것도 어렵습니다.

ing….


미성년에세머와 기혼자 에세머에 대한 생각.

미성년에세머/기혼에세머에 대한 글은 언제나 뜨거운감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뜨거운감자를 식혀줄 누군가는 필요하고 그 뜨거운감자를 식힐 바람을 누군가는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기혼에세머에 대한 얘기를 먼저 시작을 해야겠다.

뭐 언제나 기혼에세머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계속 쭉 이어져 왔던것이고 기혼에세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수는 없다. 이유는 분명히 성인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충분히 감수 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연 누가 해도 된다 안된다라는 선을 제시할수 없을것이다.

내 기준에서 말하자면.

일단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고 싶지 않아서 였다.

물론 개인의 성적성향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상대보단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자체를 갖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그 상대에게도 어떻게든 거짓을 말해야 하고 숨겨야 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에세머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가 되었다.

뭐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내 기준을 말을 한것 뿐이고 기혼에세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감수할수 있기 때문에 에세머로 생활을 하는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해도 된다 안된다라는 이분법적인 결론에 도달할수 없다. 개인의 주체적인 결정에 따를수 밖에 없으며 만약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고 법의 처벌도 감수를 해야 할것이다. 그것 오롯이 자신의 판단과 결정일테니까.

에세머부부 (섭섭부부,돔섭부부, 돔돔부부)들 보면 부럽긴하지만…. 나의 선택지에…. 없다.

두번째 뜨거운감자인 미성년자에세머…

내 생각….

솔직히 말리고 싶다. 좀더 성숙해진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리고 싶다.

이유는…. 섭이라고 하는 친구들은 왜? 인터넷에 그 수많은 정보들이 널려 있음에도 찾아보지 않지? 무엇이 위험한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좀 찾아봐주길바래…. 그저 시키는대로 한다고 다 좋은건 아니란말이야. 잘못되었을때 숨기고 혼자 끙끙앓게 되잖아. 최소한 성인이 되면 혼자서 끙끙앓을 필요는 없어진단 말이지.

미성년이 새디즘이나 마조히즘의 성향을 알게 되는건 절대 나쁜게 아니야. 다만 시간을 갖고 좀더 지난후에 실행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것이고 스스로도 한발자국 물러서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스스로 원하는 대답을 찾을수 있을거야.

발달단계 성장단계에 있을때 준비되지 않은 몸의 충격은 정말 오래도록 몸에 남아 그 충격을 그대로 받은채로 안은채로 살아야 한단 말이지. 지금 당장 좋은 느낌 좋다는 말 하나로 그 오랜시간을 버틸수는 없어. 한발짝 뒤로 물러나 다시 한번 자신의 상황을 성찰할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게 더 현명할거라 생각해. 만약 이 글을 보게되는 미성년에세머가 있다면 한번만 한발자국 뒤에서 너의 모습을 너의 현실을 직시해주었으면 좋겠어.

물론 선택과 판단과 결정은 미성년에세머 스스로가 하는것이지만 최소한 왜 늦춰져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찾아보고 나서 그리고 그 뒤에 결정을 해도 늦지 않고 그래도 하겠다하면 그건 그 누구도 말릴수 없겠지. 그렇게 된다면 정말 안전하게… 위험하지 않게… 몸에 충격이 최소화될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해줄수 있는 말일뿐이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뒤로 물러나 봐주길 바래.

세분화되는 성향분류…


점점 세분화되어가고 있는 성향에 대해서 왜? 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다.

왜? 새디즘, 마조히즘 이외에 무엇이 필요하던가? 이 본류의 하류가 생긴다는것은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범주가 너무 넓기에 극히 일부분만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하류가 생기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리 저리 찾다보니 본류에서 빠져나간 하류의 분류들을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물론 왜? 라는 질문으로 찾기 시작한 정보들이 정확한 팩트인지까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 발생원인 하류가 발생하게 된 원인들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시작이 되었다는데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다.

디그레이더 (나무위키발췌)

BDSM에서 굴욕이나 수치심을 성적 대상에게 줘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상 성욕 및 그런 성향의 사람을 뜻한다. 사디즘과 같은 말이 아닐까 헷갈릴 수 있겠지만 정확히 말해서 사디즘의 하위 분류라 할 수 있다. 사디즘에서 굴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것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성적 도착증을 세분화한 요소라서 낯설고 이해가 안 가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의 청소년, 특히 일진에게는 꽤나 흔하다 못 해 패시브나 다름 없는 이상 성욕이다.

경상북도 영주군의 어느 중학교 일진은 다른 남학생 둘이서 남들 앞에서 서로의 물건을 잡고 흔들 것을 강요했고 대전의 어느 중학교 일진들은 피해자에게 자신의 것을 잡고 흔들어 짜내도록 강요하고 나중에는 입으로 빨아달라고 하였고 여주의 일진들은 후배 남학생 일곱 명에게 자기들 앞에서 무려 세 차례나 용두질을 하라고 강요했다. 2010년까지 성행했던 막장졸업식도 선배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배에게 성적 수치심을 강요하는 것이 본질인데 이런 것들이 바로 전형적인 디그레이더다. 막장졸업식이나 일진의 유사성행위 강요가 대체로 동성에게 시행되기에 대한민국 청소년 사이에서 성지향성의 비율이 의심될 수 있지만 동성 그 자체보다 동성이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스레딕에서 올라온 바로는 소녀 일진은 선배 일진들이 후배 일진과의 위계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자주 집합시키고 집합을 시킨 다음에 단체로 옷을 다 벗어 알몸이 되기를 강요하고 그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뒷짐을 진 채 언냐들이 뱉은 침과 담배꽁초를 먹는 걸 기본으로 알몸으로 기합받기에 두드려 맞기에 후장이나 검열삭제를 담배로 지진다든가 남자 일진들을 불러놓고 손으로 자신의 검열삭제를 벌리게 한 뒤 모양이나 젖은 것등을 트집잡아 매도하여서 극도의 수치감을 유발해 성적 수치심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선배 일진들이 자신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겪는 후배 일진과 백합을 할 리는 절대 없다. 대한민국 청소년 사이에서는 이렇게 흔하디 흔한 이상 성욕이다.

정말일까? 이래서 디그레이더/디그레이드가 생긴것이라면…. 하하하 그냥 웃는다. 하긴 새디즘도 마조히즘도 그 생긴 원류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사드후작이나 마조흐나…. 도찐개찐일테니…

세분화되어도 그 본류인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범주안에서 세분화되어지길 바랄뿐이다. 되도 않는 이상한 것들까지 끼어들면 더 복잡해 질테니까.

잊혀져가는것들…. 아니 잊어버리는것들….


잊혀져가는건지? 잊어버리는건지… 아니면 외면한건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내 메모리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잊혀져가는건지? 잊어버리는건지.. 아니면 외면하는건지…. 점점 오래전의 기억들이 하나씩 그렇게…. 희미해져가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서 거스를수 없음을 언제나 자각하지만 인간의 메모리는 한계가 있다는것을…. 용량초과라서 하나씩 잊혀져가는건지 잊어버리는건지…

저 멀리….. 아주 멀리…. 찾아갈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내 기억들… 추억들… 그리고 경험들…. 이젠 사실 생각조차 안난다. 어떻게 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그저 가물 가물…. 그게 맞나? 할 정도로…

지극히 정상인데도…. 내 기억에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들이 가끔 들곤한다.

Good Judgment


현명한 판단.

Photo by Ekaterina Bolovtsova on Pexels.com

DS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대화 즉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많다. 그러나 그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대부분의 섭들은 돔에 의해서 끌려가기 마련이다.

그 끌려가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본능에 눌려버린 이성적판단의 결여때문인데 분명한것은 DS도 인간관계의 한 부분이긴 한데 이 DS의 중요한 포인트중에 하나가 바로 본능의 개입이다. 그렇다보니 D는 S의 본능적인 부분을 계속 건드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S들은 그 본능때문에 이성적판단의 개입자체가 결여되어 이끌려가게 되는것이다.

옛 속담에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돌려 말하면 본능은 잠시 내려두고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한다면 본능에 눌려 결여되어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DS기간이 잠시일지라도 그 잠시가 서브에겐 아주 치명적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즐기지 뭐? 라는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SM을 접기를 바란다. 뭐 접을수는 없겠지만.

SM은 여러모로 단순하지 않는 성적성향이며 취향이자 성라이프스타일이다.

혹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SM은 단순하지 뭐… 때리고 맞고 흥분하고….. 쉽다…. 말은 정말 쉽게 할수 있다. 표현도 마찬가지로 쉽게 할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인 내면은 정말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현명한 이성적판단으로 결정해야 하는것이다.

새디즘이나 메저키즘이 발현되고 스스로 성정체성을 확인한후에 과연 그 정체성을 잠재우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통제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어떤것이 옳다 그르다, 나쁘다, 잘못되었다 라고 그 누가 판단해 줄수 있나? 없다. 그 판단의 몫은 결정의 몫은 오로지 내 자신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몫도 당연히 내 몫이 되는것이다.

보편적인 가치관과 사회적인 통념이 정말 옳은것일까? 그것만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수 있나? 아니다. 사람의 삶은 다 각자의 가치관과 통념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 각자가 모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가치관과 통념이 되는것일뿐 그것이 올바르고 정의롭고 사람이 가야할 길은 아니란것이다.

즉 한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통념은 존중받아야 하고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각 개인의 자유를 대변하는것이고 또한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DS는 좀더 특별한 관계이며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수평적인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설정이 되는것이며 그 수직적인 관계설정은 요즘 소위말하는 갑을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가 되는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DS에서 거부권도 있고 저항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거부권과 저항할수 있는 권리조차 무시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것은 곧 내게는 피해가 될수 있고 나는 피해자가 되는것이다.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주종의 관계가 곧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가치관과 통념을 갖고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하면 나는 즉 피해자가 되는것이고 나는 가해자가 되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내가 하고자하는것과 상대가 하고자 하는것이 많은 부분 일치하고 또한 상대가 나를 어떻게 핸들링을 하게 되는지도 면밀히 대화를 하면서 살펴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본능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과 통념에 의해서 본능의 간섭이 없이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상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면 물어라 그리고 다시 물어라 내가 가진 의구심이 사라질때까지. 그래도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상대와는 더이상 그 무엇도 진행을 해서는 안된다.

의혹에 대한 해명의 수준이 아닌 그 상대의 진심을 진정성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것은 DS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될수 있는것이다.

친구라고 해서 나의 모든것을 다 알고 상대에 대해서 다 알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아닌 이상 나를 다 알수 있는 상대는 없다. 그게 나의 부모형제라 할지라도 나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내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다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 어불성설이다. 다른이들보다 조금더 알뿐이지 나를 다 안다고 말하는것은 바로 거짓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작정하고 속인다면 속을수밖에 없다. 물론 확인을 하고자 한다면 확인을 하겠지만 상대의 속임수를 눈치를 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 속임수를 눈치챌수 없을만큼 이미 그 상대에게 빠져버릴때가 많다. 이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것이며 또한 DS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중에 하나다.

상대의 속임수를 눈치챌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을 것이다. 있다. 그러나 알려줄수는 없다. 모든이에게 다 적용할수는 없는것이고 그 상대의 방법에 따라 다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

서브라는 포지션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였다.

DS를 전제로 만약 상대와 대화중이라면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깊은 대화를 하는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본능적인 부분에 치우쳐버린 대화는 이끌려가기 때문에 에셈적인것이 아니라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고 그리고 플레이 목적이 아닌 상대를 알기 위한 만남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 DS를 위한 대화중인데 관계설정도 안되었는 플레이를 목적으로 테스트플레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목적만남을 한다면 원한다면 그 관계는 미리 종료하는게 맞다. 내가 준비가 안되었는데 무슨 플레이가 되나? 그러나 소위 발정나서 참을수가 없다면…. 아이스버킷첼린지를 하길 바란다. 참을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다.

본질.


본질1本質

  • 1.사물을 그 자체이도록 하는 고유한 성질
  • 2.한 사물이나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보편적이고 변함없는 요소들의 총체

본질2本疾

  • 본래부터 있어 다 낫지 않고 때때로 도지는 병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새디즘과 메저키즘은 선천적이며 이 선천적기질은 어떠한 요소에 의해서 발현되어 그 깊이와 통제의 여부에 따라서 범죄적으로 이용될수도 아니면 에세머같은 부류의 삶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님에게 조언을 받았다. 구인을 위한 글이나 표현을 했으면 좋겠다는….

내 글에서 나는 좀 강한느낌을 주는 사람인지라 글만으로 상대에게 나를 어필하는것은 뭐 가능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데… 내가 원하는것은 내 글에서 나를 느끼고 받아들일수 있는 상대를 원하는것이기 때문에 기다림도 내가 감내하고 감수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새디즘이라는 본질이 발현된 이후 내 새디즘이 변한적은 없다. 그 완급을 조절하고 통제했을뿐. 근데 본질이라고 표현해도 되는것인지는 잘 모르지겠지만 본질이라는 단어이외에는 마땅하게 적용할 만한 단어를 찾을수가 없었다.